눈 안에「정교한 나침반' 숨어있었다
과학자들, 지구 자기장에 반응하는 화학물질 발견
새 눈 망막에서 햇빛 반응 단백질'크립토크롬'찾아내
철새가 '지구 자기장 감지하는 과정' 실험실에서 재현


40년 전 과학자들은 철새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길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나침반 바늘이 지구 자기장에 따라 남북극을 가리키듯 철새에게도 같은 기능을 하는 뭔가가 있을 것으로 추정돼 왔습니다.
이후 거북과 도마뱀, 가재에서부터 곤충에 이르기까지 50여 종의 동물이 지구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은 어떻게 지구 자기장을 감지할까요.
최근 미국과 영국 과학자들이 태양전지를 연구하던 도중 철새의 눈에 들어 있는 한 화학물질이 지구 자기장에 정확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동물의 눈에 일종의 화학 나침반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나침반이 있으니 직접 지구 자기장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철새의 눈에 들어 있는 화학 나침반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디븐스 거스트(Gust) 교수와 영국 옥스퍼드대의 피터 호어(Hore) 교수 공동 연구진은 지난달 30일 '네이처'지 인터넷판에 발표한 논문에서 철새가 햇빛을 이용해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메커니즘을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철새가 길을 찾는 데 지구 자기장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정확한 메커니즘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자석입니다. 나침반 바늘이 남북극을 가리키는 것도 지구라는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장 때문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지구 자기장은 아주 미약해 생체분자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돼 왔습니다. 지구 자기장은 3000만~6000만분의 1테슬라(teslar·자기장의 단위) 정도로 냉장고 모터에 들어가는 자석에 비하면 세기가 2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MRI는 자기장이 보통 1.5~3테슬라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 미미한 지구 자기장이 생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3년 전에 나왔습니다. 독일 올덴버그대의 헨릭 모리슨(Mouritsen) 교수는 2005년 철새가 해질녘에 지구 자기장을 파악해 길을 잡을 때 눈의 망막에서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라는 단백질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단백질은 해질녘 햇빛에 많이 포함된 청색광에 주로 반응합니다.


거스트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리슨 교수가 발견한 크립토크롬과 기능·구조가 흡사한 인공물질을 새로 합성해 철새의 지구 자기장 감지 메커니즘을 입증했습니다.



◆자기장 변화 따라 전자 흐름 달라져


원래 연구진은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모방해 효율이 높은 태양전지를 만들기 위해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 물질이 빛을 받아 전자의 흐름, 즉 전류를 발생시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립토크롬이 지구 자기장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철새 연구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연구진은 크립토크롬과 구조와 기능이 흡사한 CPF란 물질을 합성했습니다. 가을에 은행잎을 노랗게 만드는 색소인 카로티노이드(carotinoid), 엽록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식물 색소 포르피린(porphyrin), 그리고 탄소 원자 60개로 이뤄진 둥근 공 모양의 풀러렌(fullerene)이 차례대로 연결된 형태다. CPF는 이 물질들의 영문 앞 글자를 따 만든 이름입니다.


카로티노이드와 포르피린, 풀러렌은 각각 전자 두 개를 쌍으로 갖고 있어 전기적으로 안정돼 있습니다.
여기에 해질녘과 같은 정도의 빛을 가하면 우선 포르피린이 빛 에너지를 흡수해 고(高)에너지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옆에 있는 카로티노이드에서 전자 하나가 풀러렌 쪽으로 이동합니다. 결국 카로티노이드는 전자 하나를 잃어 (+)전기를 띤 상태가 되며, 풀러렌은 전자 하나가 더 많아져 (-)가 됩니다.


CPF가 이처럼 전기를 띠는 것은 찰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연구진은 CPF가 전기를 띠었다가 다시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이 자기장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새의 눈이 전기 신호를 이용해 지구의 미세한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거스트 교수는 이번 연구가 철새 보호에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발전소와 통신 장비에서 나오는 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최근에는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자기장이 유럽에 사는 철새들이 길을 찾는 데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철새가 가진 화학 나침반은 미세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도록 발달돼 있는데, 예전에 없던 강력한 인공 자기장이 발생해 오작동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어바인 캘리포니아대의 톤스턴 리츠(Ritz)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지구 자기장이 광화학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한 연구 결과"라며 "철새의 지구자기장 감지에 대해 지금까지 제시된 이론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구 자기장


눈으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면, 다음 단계의 연구는 어떻게 이 정보를 뇌가 인식하느냐는 것입니다. 코나 귀가 아닌 망막에서 지구 자기장을 인식한다면 운전자가 내비게이터에 나온 지리 정보를 보듯 철새도 직접 눈으로 방향 정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모리슨 교수는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지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철새의 눈에서 시각 정보 중추를 거쳐 뇌로 자기장 정보가 전달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클러스터(Cluster) N'이라고 알려진 뇌 부위가 철새가 방향을 인식할 때 특히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리슨 교수는 철새의 망막과 뇌에 신경 활성 추적물질을 주입했습니다. 그 결과 망막 크립토크롬에서 뇌 시상(Thalamus)으로 신경 활성 추적 물질이 전달됨을 확인했습니다. 시상은 간뇌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부위입니다. 그렇다면 망막에서 자기장에 대한 정보가 인식되고 그 정보가 시상에서 처리된 다음, 최종적으로 대뇌 클러스터 N에서 해석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장 정보의 전달 경로가 시각정보 처리 경로와 같다는 사실은 직접 눈으로 자기장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투기 조종사가 헬멧에 부착된 헤드 업 스크린으로 각종 정보를 보듯 철새도 직접 눈으로 지구 자기장의 세기와 방향을 보고 길을 잡는다는 추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출처> 조선일보, 2008.05.06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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