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의 접착력은 지금까지 생물체에서 알려진 가장 센 결합력의 4배에 달한다. 물에 젖을수록 더욱 강력한 접착 능력을 갖게 되는 홍합 접착제는 수술 후 상처 부위를 붙이는데 실 대신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전복은 웬만한 충격에도 잘 부서지지 않는 초고강도 무쇠 껍데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구조를 활용한 방탄복을 만들면 가벼우면서도 쉽게 총알을 막아낼 수 있다.

이처럼 최근 생명체의 뛰어난 기능을 모방해 인간생활에 적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내려는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로 자연을 재창조하는 생체모방공학이다.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재단

홍합의 접착력은 폭풍우에도 끄떡없다. 딱정벌레의 단단한 껍데기는 갑옷을 능가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파리는 선회, 회전, 후진, 8자비행 등 다양한 비행 기술을 동원해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생명체들이 보여 주는 놀라운 능력은 끝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를 이 같은 생명체의 ‘뛰어난 힘’을 모방해 인간생활에 적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내려는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로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이다.

생체모방은 살아 있는 생물의 오묘한 행동이나 구조, 그들이 만들어 내는 물질 등을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생체(Bio)’와 ‘모방(mimetics)’이란 단어가 합성된 것이다.

사실 생체모방이라는 개념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원시시대에 사용되던 칼과 화살촉 같은 사냥 도구가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을 모방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새처럼 날고 싶은 인간의 꿈은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라이트 형제가 새를 모방해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지 100여년. 이제 인류는 새로운 비행체를 꿈꾸고 있다.

접착력을 모방한 기술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생체모방을 ‘공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나노 기술과 극소량의 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생명공학 등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해 진 것.

생체모방공학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곤충. 곤충의 뇌 신경시스템은 척추동물보다 상당히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기억이나 학습능력 등 고도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체모방의 모든 것은 자연에 존재한다. 자연이 훌륭한 스승인 셈이다.

홍합의 접착력은 지금까지 생물체에서 알려진 가장 센 결합력의 4배에 달한다. 홍합이 바위에 단단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은 10개의 아미노산이 반복돼 있는 단백질 때문이다.

물에 젖을수록 더욱 강력한 접착 능력을 갖게 되는 홍합 접착제는 수술 후 상처 부위를 붙이는데 실 대신 사용할 수 있어 의학에서 혁명과 같은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홍합의 콜라겐 단백질을 이용해 사람의 피부보다 5배나 질기고 16배나 잘 늘어나는 인공 피부를 만들고 있다.


도마뱀붙이도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도마뱀붙이가 천장이나 유리 벽면에 거꾸로 매달려 잘 오르고, 또한 안전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발바닥에 난 무수한 극미세 털 때문이다.

이를 모방해 접착력이 매우 강하면서도 붙였다 뗄 수 있는 테이프가 몇 년 전 영국 맨체스터 대학과 러시아 공동 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이들이 개발한 테이프는 1㎤로 3㎏을 천장에 매달 수 있다.

자연에서 배운 아이디어로 상품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벨크로’ 테이프가 있다. 일명 ‘찍찍이’라고도 부르는 벨크로는 바로 엉겅퀴의 갈고리를 흉내 낸 것. 한 면에는 고리를, 또 다른 면에는 갈고리를 붙여 서로 붙이면 고리에 갈고리가 걸려서 강한 접착력을 지니게 된다.

벨크로는 지난 1940년대 초 스위스의 엔지니어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엉겅퀴 씨앗이 강아지 털에 붙은 것을 보고 발명했다. 오늘날 벨크로는 옷소매에서부터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안의 도구를 고정시키는데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

신기술의 씨앗은 자연 안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수영복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무려 27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시속 30㎞로 헤엄치는 상어의 비늘을 모방한 최첨단 수영복을 입은 것.

상어 비늘에는 작은 돌기들이 있는데, 이것은 물의 마찰 저항력을 줄여 더욱 빠른 스피드를 내게 한다. 선수들은 수억 년 동안 바다에 살며 터득한 ‘상어의 지혜’를 입고 0.01초의 기록을 앞당겼다. 이 원리는 비행기에도 적용된다. 항공기의 경우 10%만 공기 마찰을 줄여도 연료절감을 통해 이익이 무려 40%나 늘어난다.


건축에서도 생체모방공학이 사용된다. 벌집의 정육각형 모양이 비행기나 집의 내부 자재에 이용되고 있는 것.

꿀벌은 배에 붙어 있는 밀랍 샘에서 밀랍을 분비, 벌집을 짓는다. 그런데 벌집의 각 방은 하나같이 육각형이다. 다윈은 이 육각형 벌집을 일러 ‘낭비가 전혀 없는 완벽한 구조물’이라 극찬했다.

실제 정육각형 구조는 최소의 건축 자재를 써서 최대의 공간을 얻는 경제적인 건축 방법이다. 육각형의 한 면은 이웃하는 면과 빈틈없이 연결되는 공동의 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장에 사용되는 골판지, 벽걸이 텔레비전에 사용되는 액정화면의 구조, 무선이동통신의 기지국 설계, 비행기 날개나 고속전철 차체 등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물방울이 굴러 떨어지는 구조로 돼 있는 상품도 나와 있다. 바로 연잎을 모방한 것이다.연잎 표면에는 극히 미세한 털이 무수히 나 있어 물방울이 표면에서 퍼지지 않고 공처럼 동글동글 말려 구르게 돼 있다. 이것은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수많은 돌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르는 물방울은 표면의 먼지까지 쓸고 가 연잎은 항상 깨끗하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 바스프사는 나무나 가죽, 옷에 뿌리면 쪼르륵 굴러 떨어져 물의 침투와 오염을 방지해 주는 스프레이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잘 이용하면 유리창 바깥쪽을 닦지 않아도 비가 오면 스스로 빗물에 청소가 되도록 할 수 있다. 건물 외벽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만든 최고 강도의 세라믹보다도 2배 정도 더 강하고 단단한 전복 껍데기의 구조를 응용한 연구도 있다.

전복은 웬만한 충격에도 잘 부서지지 않는 초고강도 무쇠 껍데기를 갖고 있다. 전복 껍데기는 지름 10㎛, 두께 0.5㎛ 크기의 탄산칼슘 타일 수천 개가 겹겹이 쌓여 있는 형태며, 각 타일은 단백질 접착제로 단단하게 붙어 있다. 이런 구조를 활용한 방탄복을 만들면 가벼우면서도 총알을 쉽게 막아낼 수 있다. 미국 워싱턴 대학 연구팀은 전복 껍데기의 분자 배열을 분석해 전투에 사용되는 탱크의 철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거미줄로 실을 만들면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 10배는 더 강하다. 강도뿐만 아니라 유연성도 대단해서 웬만해서 끊어지지 않는다. 철사 줄 정도의 두께로만 뽑아낸다면 피아노도 천장에 너끈히 매달 수 있을 정도다.

독일 라이프니츠 연구소는 거미줄을 이용한 신소재를 의학 분야에 적용했다. 수술할 때 이 소재를 상처 부위를 꿰매는데 이용하면 몸속에서 저절로 녹아버리기 때문에 수술 후 귀찮게 실을 찾아 제거할 필요가 없다.

로봇과 우주선에도 활용

생체모방공학은 로봇을 만드는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바퀴벌레의 다리 움직임을 모방해 울퉁불퉁한 곳에서도 똑바로 갈 수 있도록 설계된 로봇, 자벌레의 몸 움직임을 이용해 대장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내시경 로봇이 대표적이다. 또한 굴곡이 있어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지네 로봇 등 로봇 기술의 모티브가 되는 곤충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일본 도쿄 대학의 시모야마 교수는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본뜬 ‘로보로치’를 만들었다. 즉 연구 팀은 바퀴벌레가 움직일 때 더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 기신호를 측정해 이 신호를 인공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회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축소해서 탑재한 로봇을 만들었다.

이 로봇의 신경시스템에 전기적 자극을 주면 명령에 따라 좌우로 돌거나 앞으로 돌진한다. 이것은 생물 바퀴벌레에게 동일한 자극을 주었을 때의 반응과 같다.

생체모방공학은 우주공학 기술도 한 단계 끌어 올릴 전망이다. 일례로 지금까지는 우주선 선체에 상처가 났을 경우 우주인이 직접 나가거나 로봇팔로 수리를 해오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영국 브리스톨 대학 항공우주공학과의 이언 본드, 리처드 트래스크 교수팀이 자연적으로 액체가 흘러나와 상처를 매워주는 획기적 우주선 소재를 개발함으로써 앞으로는 우주선 스스로 상처를 수리할 수 있게 됐다.

이 아이디어는 상처가 공기에 노출됐을 때 혈액이 응고되는 사람 피부에서 얻었다. 물론 우주에는 공기가 없어 흘러나온 액체 가 응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재 표면에 상처가 나는 순간 굳어버리는 특수 액체가 함께 분비되도록 함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21세기 항공학자들의 새로운 관심사는 무인로봇 비행기다. 군사 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길이 15㎝ 이하의 초소형 무인비행체 MAV(Micro Air Vehicle)는 정찰·수색·테러 진압 등 군사작전에서부터 원자로 청소, 인명구조까지 인간의 눈과 발을 대신한다. MAV 모방의 대상은 바로 파리다. 파리는 2㎝의 날개, 무게는 0.1g, 1초에 200번 날개짓을 해서 3m를 난다.

이제 도시의 하늘에서 자연의 원리와 인간의 기술로 탄생한 파리 로봇 정찰대를 볼 날도 머지않았다. 이 밖에도 자연을 모방한 기술은 많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자연을 모방해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과학이 발전해 신기술로 자연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다.

생체모방공학은 자연을 재창조하는 과정이자 이해하는 과정이다.

생체모방공학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이 있는 것이다.

<출처> 파퓰러사이언스, 2008. 4 기사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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