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이날 전 세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본 동북부지역 도호쿠 지방 근처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이었다. 진도9.0 지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본을 보며 새삼 인간의 나약함을 확인했다.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서 세계 경제 대국이라는 명성도, 과학 기술 강국이라는 위상도 온데간데없었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도 이달 중순이면 100일을 맞는다. 대지진의 충격은 점차 잊히고 있지만 그 파장은 여전히 지구촌을 짓누르고 있다. 피해 지역에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은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고 재해 복구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거의 매일 지진 악몽에 휩싸이는 일본은 과연 이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일본은 주지하다시피 지진이 가장 빈번한 지역이다. 그만큼 지진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분석과 예측 능력 그리고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 2009년. 일본은 이미 동부 해안에 지상 10m, 지하 60m의 방파제를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지금까지 발생한 해안 주변의 지진을 막을 수 있는 대규모 공사였다. 완공 후 일본은 이제 “신의 노여움까지 막을 수 있다”며 안도했다. 그러나 누구도 리히터 규모 9.0 이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진 전문가들에 따르면 9.0을 견디기 위해서는 지상 40m, 지하 200m 이하의 방파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자연 재해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세계가 바로 미래다. 미래는 말 그대로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의 운명을 알 수 없듯이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이 제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신의 영역이다. 해답도 없을 뿐더러 시간이 없이는 해답조차 확인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미래만큼 흥미진진한 테마는 없다.

미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미래학’이다. 미래학은 이론과 가설 자체를 검증 못하고 예측 불허라는 면에서 아직 정식 학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치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주역이나 사주팔자가 정통 학문으로 대접을 못받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은 대안 미래학이라는 관점에서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놨다.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지만 선택 가능한 미래가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예상하며 인류가 최적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미래 예측은 크게 두 가지 흐름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인류학과 역사학 관점에서, 또 하나는 과학기술 입장에서 예측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4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래학의 대가인 제임스 데이토 하와이대 교수는 전 세계 미래학자와 공동으로 4가지의 미래 원형을 제시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지속 성장(Continued growth)’ 모델이다. 인류는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특징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항상 위기와 도전이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해 왔듯이 미래도 지속 성장하리라고 확신한다. 지속 성장 모델은 다분히 성장 지향적이고 삶의 여유가 있으며 풍요로움이 가득한 사회를 그린다.

공급 중심의 경제 체제가 자리 잡고 도덕적인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다. 경제 자립이 보장되면서 자유주의가 번창하고 산업이 초고속으로 고도화되는 특징을 띤다. 지금 미국 사회가 가진 주요한 특징들 가령 성장 지향, 기회 보장, 기술 진보, 풍요, 자유로운 사회 등을 지속 사회를 이끄는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두 번째는 ‘붕괴(Collapse)’ 모델이다. 인류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면서 결국 멸망하거나 멸망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오히려 더 쇠퇴하거나 정체한다는 시나리오다. 영화 속에서 그리는 희망이 없는 미래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자원과 식량이 고갈되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화와 환경 재해로 미래가 어두워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희귀한 질병이 만연하며 지진과 화산 폭발 등 이른바 ‘신의 활동’이 주도하면서 붕괴의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다.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정치적, 행정적으로 인한 단순한 사고가 눈덩이처럼 커져 테러와 핵 전쟁, 이와 비슷한 사건의 조합으로 결국 유럽의 암흑 시대와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붕괴 모델의 징후로는 제한적인 핵 전쟁이 일어나고 세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이 범람하는 등 경제적으로 피폐해진다. 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로 건강 복지와 수명이 짧아진다고 예측한다.

세 번째는 ‘절제(Disciplined) 사회’ 모델이다. 세계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서 갑작스러운 붕괴는 아니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통제 불능 상황으로 빠져 간다는 시나리오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힘을 쓸 수 없는, 마치 서서히 침몰하는 배와 같은 사회다. 붕괴 모델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지만 성장이 꺾인 이후 뚜렷한 변곡점을 찾지 못하고 저성장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주요 특징으로는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언급한 ‘빅 브러더’가 출연하고 권위주의와 독재자가 득세한다. 자율이 아닌 힘에 의한 성장이 당연시되고 계급 사회와 비슷한 사회 체계가 만들어진다. 경제 성장보다는 이데올로기와 모호한 철학 사상이 각광을 받는다. 절제 사회의 또 하나의 징후는 선택에 의한 보존이 유독 강조된다. 환경 중심의 이상주의 사회가 강조되고 절약과 검소가 사회 유지의 기본 철학으로 깔린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변형(Transformational)’사회다.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가 온다는 가설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깡그리 무시되면서 인류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제도·기술 등 모든 면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형태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변형 사회가 온다는 주장이다. 변화의 주요 동력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 진화 속도가 걷잡을 수 없듯이 빨라지면서 초고효율 성장 사회를 만들고 사회와 구성원 모두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시나리오다. 인간과 로봇이 서로 교감하는 ‘사이버3.0’시대, 아바타를 활용해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고가는 ‘유체이탈’, 육체가 아닌 정신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고도 정신(High-spirit)’ 사회가 모두 변형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미래는 4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미래를 딱 한 가지 가설로 설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 시나리오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예상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미래는 정답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정답은 없지만 대부분의 미래학자는 기술 혁명이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미래 신기술 예측 전문가인 월리엄 하랄 조지워싱턴대 경영대 교수는 “세상의 변화는 과학기술 혁명에 의해 일어난다”고 확신한다. 미래학의 권위자인 데이토 교수도 이에 동의한다. 그에 따르면 농경 시대에 수백 년 걸리던 과학 기술 변화가 2000년에는 1년 만에, 2025년에는 2~3일 만에 바뀐다고 호언하고 있다. 데이토 교수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는 과학기술 때문에 발생하며 이 변화의 쓰나미에 올라 타라”고 조언한다.

누구도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빼놓고 미래 사회를 그리기는 불가능하다. 과학기술로 그나마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좌표를 설정할 수 있다. 신의 영역인 미래에 도전하는 게 바로 과학기술이기 때문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출처>전자신문, 2011.06.09

Posted by TopAR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