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경제한파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된 지금, 영국계 시장조사전문기관 ‘트렌드워칭’은 최근 ‘2009 트렌드 키워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불황기 소비자의 지갑을 열 키워드 여섯 가지로 ‘에코’, ‘당신만의 럭셔리’, ‘지도’, ‘니치 트리뷰트’, ‘피드백 3.0’, ‘해피 엔딩’을 꼽았다.

인간은 불안할 때마다 미래를 점쳐 왔다. 적중률이 100%가 아니면 어떠랴. 흐릿한 등불이라도 들고 동굴 같은 미래로 걸어가는 것이 더 안심이 된다면야. 천하대세를 논하는 신문이 한 귀퉁이에 ‘오늘의 운세’를 싣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불안할수록 점술에 의존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국내외 각종 악재에 노출되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은 ‘트렌드’를 미래를 읽는 길잡이로 삼기 시작했다. 점쟁이나 마법사보다 더 과학적일 뿐 아니라, 아슬아슬한 미래에 적지 않은 안도감까지 선사하는 수단으로 트렌드가 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나라 안팎 각종 악재에 소비자들은 우선 지갑 단속부터 하고 나섰다. 한동안 이어질 보릿고개에 기업도 위축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제든 세상은 돌고 도는 법, 불황과 위기 속에도 트렌드는 있다. 갑작스러운 경제한파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된 지금, 영국계 시장조사전문기관 ‘트렌드워칭’은 최근 ‘2009 트렌드 키워드’에 대한 보고서에서 소비자의 지갑을 열 키워드 여섯 가지로 ‘에코’, ‘당신만의 럭셔리’, ‘지도’, ‘니치 트리뷰트’, ‘피드백 3.0’, ‘해피엔딩’을 꼽았다.



신문이나 TV에 등장하는 ‘에코(eco)’라는 단어에 다소 싫증이 났다면 올해는 좀 달라진 ‘에코’를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공급자 관점에서 ‘환경’이 화두가 됐다면 이제는 수요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친환경이라는 가치가 단순히 윤리적인 소비 행태를 넘어서 경제적인 소비 습관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 에코는 더 이상 돈 드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환경과 관련된 트렌드는 계속 탈바꿈하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친환경이 접목된 에코-임베디드(Eco-Embedded)에서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운 에코아이코닉(Ecoiconic)으로, 이제는 이콘시어지(Econcierge)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콘시어지란 환경(ecology)과 관리인(concierge)을 합성한 신조어로 사회 구성원이 친환경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서비스나 기업을 말한다. ‘그린(green)’을 콘셉트로 소비자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첫 번째 해답이다.



미주 지역의 풍력자원지도를 제공하는 쓰리티어(3TIER)는 매년 전기상 자료를 분석해 지역별로 일조량, 풍량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이 정보는 풍력, 태양열 등 신(新)에너지 기업들이 어디에 풍차를 세우고 태양열 패널을 설치할지 결정하는 데 유용한 역할을 한다. 쓰리티어는 조만간 다른 국가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부자의 지갑을 여는 럭셔리는 언제든 최고의 관심사다. 올해 럭셔리 브랜드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경제난 속에서 럭셔리에 대한 정의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비싸고 좋은 것이 최고의 럭셔리였다면 2009년에는 과시와 사치가 아닌 특별한 경험을 전달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당신의 이름을 드러낼 럭셔리, ‘Luxyoury(Luxury+your)’가 준비돼 있다.

영국 런던의 러프 럭스 호텔은 이름 그대로 ‘날것(rough)’의 럭셔리 호텔이다. 이 호텔의 벽은 도배 전 잿빛 시멘트 벽 그대로다. 마치 도시 속 버려진 건물 같다. 하지만 잿빛 벽은 팝아트풍 그림을 걸자 멋진 갤러리가 됐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에이스 호텔 뉴욕’은 재활용품 매장이나 벼룩시장에서 구해 온 ‘값싸 보이는’ 소품들로 호텔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하루 숙박료가 수백 달러에 달하는 호텔치고는 성의 없는 인테리어에 누가 찾아올까 했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뉴요커들은 뉴욕의 숨 막히는 속도전을 피해 자유분방한 이곳으로 모여들었기 때문.


지도도 단순히 길 안내나 건물의 위치만 알려 주는 시대는 지났다. 아침 출근길 에스프레소 커피와 갓 구워낸 베이글을 파는 델리숍을 알려 주거나 이번 주말에만 엄청난 할인가로 옷을 구입할 수 있는 쇼핑몰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경기 악화로 맵 마니아(map mania)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트렌드워칭은 전망했다. 빵집이나 호텔, 커피숍 등 소비자와 밀접한 유통업체들은 브랜드를 알리기보다 지도 위에 자신들의 간판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이제 지도는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구글이나 야후, 네이버 등 전 세계 인터넷 포털 회사들이 너도나도 지도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도는 인터넷 모니터 상 뿐 아니라 자동차 네비게이션에서부터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응용될 것으로 트렌드워칭은 내다 봤다.


출퇴근길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안에서 검지로 정보기술(IT) 기기의 스크린을 조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 장갑을 벗고 차가운 금속기기에 손가락을 대기는 꺼려진다. 그렇다면 엄지와 검지 일부만 노출시킨 장갑은 어떨까.

손가락으로 스크린 조작이 쉽지 않다면 ‘닷츠 글러브’를 끼어 보는 것은 어떨까. 스크린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손가락 끝 부분에 금속 점을 부착한 이 장갑은 좁쌀만한 쇠붙이 덕에 대박이 났다.

의외로 소비자들은 사소한 것에서 구매를 결정한다는 ‘니치 트리뷰트(Niche-tribute)’가 트렌드워칭이 제시하는 해답이다.

물론 니치 트리뷰트는 IT 기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에서는 비행기 탈 일이 잦은 소비자를 위해 건조한 기내(機內)에서 피부와 눈가에 수분과 영양분을 제공하는 제품을 내놓았다. 불편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그곳에 길이 있다.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던 1990년대 소비자들은 온라인 상에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자신의 사용후기와 불평을 쏟아 놓았다. 트렌드워칭은 이를 피드백 1.0으로 명명했다.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무시했다.

지금은 기업들이 소비자의 불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불만에서 기업이 개선되어야 할 점을 찾고 있다. 피드백 2.0으로 진화한 것.

그러나 여전히 기업은 들으려고만 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기업이 보다 빨리 문제에 대처하면 할수록 소비자의 불만은 더 쉽게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트렌드워칭은 영리한 기업일수록 소비자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선다고 말한다. 불만이 가득한 리뷰에 사과 글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한다면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소비자들은 그 기업에 대한 충성스러운 고객이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피드백 3.0이다.


이제 흥청망청 쓰던 소비의 버블도 끝났다. 이제 소비자들은 진정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하게 됐다. 과거에는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돈을 썼다면 이제는 내 주머니에서 돈이 덜 나가는 행복, 저소비 모델(lower consumption models)로 바뀌고 있다.


- 정효진 / 동아일보 기자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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