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바이오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신약 개발이다. 몸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신약 개발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신약 개발의 필수과정인 막단백질 결정화에 탁월한 양쪽성 물질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양대 생명나노공학과의 채필석 교수 연구팀이 연구를 통해 '케미컬 커뮤니케이션(Chemical Communications)'지 온라인판에 논문을 게재한 것이다.


막단백질은 신약 개발의 중요한 표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물질로, 물질수송이나 외부신호를 감지하는 등 세포의 관문으로 중요한 생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세포표면의 세포막에 끼어 있는 단백질로 세포 성장과 분화에 관여해 암이나 뇌질환 등 다양한 질병과의 연관성이 보고되고 있다. 단백질 구조분석 중에서도 고난이도 과제로 꼽히는 막단백질은 세포막에서도 그 추출이 매우 어려운 물질 중 하나다.


보다 작고 안정적인 물질 개발


“세포막에 존재하는 막단백질은 물질수송 및 신호전달과 같은 중요한 생리적 현상을 관장한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신약의 절반 이상이 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막단백질이 생체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알려진 막단백질 구조(수백 개)는 용해성 단백질(수만 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막단백질이 친수성과 소수성을 동시에 가지는 양쪽성을 지니고 있어 수용액에서 쉽게 변성되거나 응집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분석 및 연구가 악명 높도록 어렵기 때문이다.”


막단백질 구조를 수용액에서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detergent로 불리는 양쪽성 물질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양쪽성 물질이란 이름 그대로 ‘양쪽’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여기서 ‘양쪽’이란 물과 친한 친수성과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을 의미한다.


양쪽성 물질은 친수성과 소수성을 동시에 갖고 있어 물과 같은 극성분자뿐 아니라 오일과 같은 무극성분자와도 결합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비누나 세제의 주요성분이 바로 양쪽성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물과 기름의 양쪽 모두와 친한 성질 때문에 양쪽성 화합물은 막단백질의 소수성 표면에 결합해 그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양쪽성 화합물의 소수성 부분이 막단백질 소수성 표면을 감싸 표면 전체가 친수성인 양쪽성 화합물-막단백질 복합체를 형성해 물에 대한 용해도가 증가하고 막단백질의 소수성 부분끼리 서로 달라붙는 응집현상을 방지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양쪽성 물질은 막단백질의 소수성 부분을 감싸 그 표면을 친수성으로 개질, 물에 대한 단백질 용해도를 증가시키고 물질들끼리 응집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널리 사용되는 전통적인 양쪽성 물질이라 할지라도 막단백질의 변성과 응집을 막는 데 큰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새로운 종류의 양쪽성 물질 개발이 절실하게 요구돼 왔다.


“양쪽성 물질의 핵심적 역할 때문에 수십 년간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다수의 양쪽성 물질들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막단백질 구조 규명에 활용된 성공적인 사례는 거의 없는 상태다. 대부분의 막단백질 구조는 새로 개발된 물질에 의해서가 아닌 기존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물질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규명돼 왔다. 우리 연구팀은 간단하지만 체계적인 분자설계 및 합성을 통해 기존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양쪽성 물질을 개발했고 세계적인 막단백질 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다수의 막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장벽은 구조분석에 적합한 막단백질 결정을 얻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어떤 요소들이 막단백질 결정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포막에서 추출한 후 막단백질의 본래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대세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 때문에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막단백질 구조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많은 물질이 개발됐음에도 대부분 새로운 막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이는 막단백질의 구조 안정화가 그 결정화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막단백질의 친수성 부분의 표면적이다. 막단백질의 결정이 형성될 때 이 친수성 부분끼리의 결합이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므로 그 면적을 늘리면 단백질 결정화가 잘 일어난다. 이를 위해서는 막단백질·양쪽성물질 복합체의 크기가 작아야 한다.”


이에 따라 채필석 교수는 기존 연구에서 간과했던 점을 착안, 복합체의 크기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막단백질의 안정화 특성에도 우수한 GNG 물질을 개발했다.

 

“아직 갈길 멀지만, 좋은 영향 끼치길”

 

 

채필석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채 교수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할 당시 시작됐다. 그의 지도교수가 채 교수에게 프로젝트를 맡기며 출발한 연구인 것이다. 채 교수는 “연구 초반에는 분야의 생소함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찰력을 얻게 되면서 보다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지난 2010년 낮은 농도에서도 막단백질 응집을 효과적으로 저해하는 양쪽성 물질 MNG를 개발해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에 논문을 게재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TFA와 GDN 등 다양한 물질을 개발해 세계적인 학술지에 게재했다.


그러나 기존에 개발한 양쪽성 물질 MNG와 GDN은 탁월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막단백질과 다소 큰 복합체를 형성해 단백질 결정화를 방해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막단백질을 감싼 복합체 크기를 보다 작게 만들면서 동시에 막단백질의 안정화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양쪽성 물질 개발 연구에 착수한 것이다.


현재 해당 연구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연구는 그 특성상 막단백질 구조 전문가들과의 공동연구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채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공동연구자들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초창기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나처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연구자가 개발한 물질을 자신들이 만든 귀중한 막단백질을 소비하면서까지 평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막단백질 연구자들은 우수한 특성을 지니는 새로운 종류의 양쪽성 물질 개발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면서도 과연 그런 물질이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공동연구를 위해 개발한 샘플을 여러 연구실에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 공동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1년이 지나도 결과를 보내주지 않는 그룹이 많았다.”


공동연구자를 찾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그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201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브라이언 코빌카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함께 연구할 연구자를 계속 찾고 있던 차에 우연치 않은 기회에 스탠포드 대학의 코빌카 교수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2008년 말에 공동연구를 시작했으며 초반에는 두각을 나타낼 만한 연구 결과가 없었지만 꾸준히 새로운 물질 개발을 시도해 2009년 초반에 코빌카 교수가 흥분할 만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물질이 바로 MNG라는 물질이다. 이를 활용해 2011년도에 코빌카 교수가 노벨상 핵심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공동연구를 통해 10편이 넘는 논문에 이름을 같이 하고 있다.”


채 교수는 이번 연구가 신약 개발의 만병통치약으로 비춰질까 스스로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신약 개발에 큰 혁명이 일어났다는 해석은 조금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발한 GNG 양쪽성 물질을 통해 지금까지 규명하기 힘들었던 다수의 질병 관련 막단백질의 구조가 규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단단한 초석을 다진 것에 틀림없다. 채필석 교수는 앞으로 이 연구를 바탕으로 복합체 구조를 안정화하는 양쪽성 물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출처>ScienceTimes, 2013.03.14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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