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시간 대칭성을 갖는다.

시간은 왜 한 쪽으로만 흐를까?


시간은 신비하다. 우주에서 시간이 개입되지 않는 존재란 상상할 수가 없다. ‘순간’도 ‘영원’도, 그리고 ‘불변’과 ‘변화’도 모두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만약 인간이 언젠가 우주의 모든 신비를 파헤치게 된다면, 아마도 최후에 알게 될 신비는 시간일 것이다. 시간에 대한 수많은 의문 중에서 시간의 화살, 즉 시간의 방향성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은 왜 늙기만 하고 젊어질 수 없을까? 죽었던 인간이 되살아나 노인이 되고 나이를 점점 거꾸로 먹어 갓난아이가 될 수는 없을까? 또, 높은 데서 떨어진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깨어진다. 그 조각들이 거꾸로 다시 한데 모여 온전한 유리잔이 될 수는 없을까?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면 물리 법칙들이 바뀌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물리법칙은 시간 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야구공을 던지면 공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다.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거꾸로 재생하면 공이 날아가는 장면만을 보고 거꾸로 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 물론 지구에서는 공기의 저항이 있어서 에너지가 약간씩 줄어들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만약 진공 상태에서 실험했다면 알아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당구대에서 당구공 두 개를 충돌시키는 경우에도 역시 이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거꾸로 재생하면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단한 물체가 한두 개만 개입된 사건의 경우에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건이 된다.

이것을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야구공이 날아가거나 당구공이 충돌할 때 관여하는 물리 이론들이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여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물리이론이 시간 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뉴턴의 운동법칙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정도면 대부분 다 설명할 수 있다. 이 이론들은 시간 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보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야구공이나 두 당구공의 충돌 동영상을 거꾸로 재생해도 우리가 알아챌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리고 사실은 상대성이론양자역학마저도 시간 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즉, 원자수준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물리이론들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게 해도 이론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분을 배운 독자들을 위해 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시간 t가 위치 x를 두 번 미분한 꼴로 들어간다. 여기서 시간 t를 -t로 바꿔보자. 그러면 위 식은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마이너스가 제곱으로 들어가므로 본래의 방정식과 같아진다. 즉,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해도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시간 되짚기 대칭성을 가지지 않는 까닭은 구성 원자의 개수가 많기 때문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의문을 낳는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원자로 되어 있다. 유리잔도 원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늙기만 하고 젊어질 수 없을까? 왜 유리잔은 깨지기만 하고, 깨진 유리잔이 다시 붙을 수 없을까? 왜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없을까? 왜 야구공은 되는데 인간은 죽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어찌 보면 좀 허탈하다. 인간이나 유리잔이 너무 많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야구공이나 당구공 두 개의 충돌도 깨지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당구 포켓볼을 생각해 보자. 포켓볼은 당구공들을 삼각형으로 잘 정돈시켜놓고 다른 당구공 하나로 쳐서 흩뜨림으로써 게임이 시작된다.

이제 막 당구공을 쳐서 삼각형으로 정돈된 당구공들이 마구 흩어지고 있다고 해보자. 이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거꾸로 재생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저기 흩어져 제멋대로 움직이던 당구공들이 가던 길을 거꾸로 거슬러가다가 어느 순간 기적처럼 완벽하게 정삼각형으로 정돈되면서 그 삼각형을 맞췄던 당구공이 시작 위치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혹시 이런 일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본 독자가 있는가? 물론 없을 일이다. 그렇다면 당구공 두 개의 충돌은 거꾸로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포켓볼에서는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인가? 두 경우의 유일한 차이는 당구공의 개수이다. 하나는 당구공 두 개의 충돌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당구공(십여 개)의 충돌일 뿐 완전히 같은 물리이론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물리이론이 적용되고 있어도 개수의 차이에 따라 사건이 거꾸로 일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라진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초기 조건과 확률의 문제 때문에, 시간에 방향이 생겨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뉴턴 법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당구공들이 삼각형으로 정렬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뉴턴 법칙 자체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그대로 성립한다. 하지만 정렬이 일어나려면 처음에 당구공들이 아주 특별한 위치에서 특별한 속도로 출발해야 한다. (동영상을 거꾸로 재생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그 특별한 값들에서 아주 약간만 어긋나도 당구공들이 삼각형을 만들지 못하고 멋대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초기조건의 문제이고 또한 확률의 문제이다. 인간이 초기에 삼각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쳐서 흐트러뜨리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나중에 삼각형이 되도록 초기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돈된 상태는 멋대로 흩어진 상태에 비해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작은 특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래 뉴턴 법칙 같은 물리이론에서 시간이 어느 쪽으로 흐르든지 간에,이론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시간에는 확률적인 이유로 인해방향이 생겨버린다. 왜냐면 시간이 두 방향 중에 어느 한 쪽으로 흐른 그 ‘다음’ 순간에는 입자들이 그 ‘전’보다 확률적으로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위의 예에서는 당구공이 흩어지는 상황)으로 변해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쪽의 시간 방향이 자동으로 ‘미래’가 되어버린다.


엔트로피가 커지는 쪽으로 시간이 흐른다 :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물론 입자 몇 개부터 시간에 방향성이 생기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다섯 개? 열 개?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당구공의 경우에는 서너 개만 되어도 충분하다. (당구를쳐보지 않은 분들은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있다.) 당구공이 아닌 다른 경우에는 개수가 더 많아야 할 수도 있고, 적어도 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입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돈된 특별한 상태에 비해 보통 상태의 경우의 수가 매우 급격하게 많아진다. 그리고 시간의 방향성이 매우 뚜렷해진다.

물리학에서는 경우의 수가 큰 상태가 될수록 엔트로피가 높아진다고 한다. 즉, 입자가 많으면 엔트로피가 커지는 쪽이 자동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미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 하고 이렇게 나타나는 시간의 방향성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한다.

인간은 대략 1028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열 개 정도의 당구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개수다. 그러므로 인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의 흐름을 결코 거스를 수 없다. 태어나서 늙고 결국은 죽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말이다. 깨지는 유리잔도, 수십억 년 후 최후를 맞이할 태양의 운명도, 그리고 우리 우주 전체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화살은 미래를 향해 날아갈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진행 방향은 열역학적 시간이 흐르는 방향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결론이 근본 물리 이론 자체의 시간 되짚기 대칭성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뉴턴 이론이나 상대성이론 같은 근본 물리 이론이 시간 되짚기에 대한 대칭이어도, 입자의 개수가 많은 거시세계에서는 시간의 방향성이 자동으로 생겨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근본 이론에서의 미시적인 시간 되짚기와 우리가 경험하는 거시적인 시간 되짚기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화살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을 의미한다.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이외에도 다른 시간의 화살이 있고 이들은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 심리적 시간의 화살, 그리고 여러 대칭성을 많이 깨는 약력에서의 시간의 화살 등이 있다.

김찬주 /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시립대와 고등과학원,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연구하였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출처>네이버캐스트, 20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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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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