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를 대신하는 인공 피부 칩

한 화장품회사 연구소. 새로 개발한 피부 화장품의 독성(毒性)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독성시험의 필수품인 실험용 쥐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연구자는 작은 플라스틱 칩에다 화장품을 떨어뜨린다. 생쥐를 대신하는 인공 피부 칩이다. 옆에선 인공 허파 칩에 향수를 뿌리면서 독성을 검사하고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화장품에 대한 동물 시험을 전면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각국에서는 생쥐를 대체할 독성시험용 칩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 수출 길을 뚫느냐 마느냐가 손가락 크기의 작은 칩에 달린 것이다.


알레르기 시험 대신하는 칩

지난 14일 세계적인 화장품업체인 로레알은 미국 휴렐 코퍼레이션과 공동 연구·개발(R&D) 협약을 맺었다. 휴렐은 현미경을 볼 때 시료를 얹는 작은 유리기판 크기의 실험 장치인 바이오칩(biochip) 전문 회사다. 피 한 방울로 각종 혈액 검사를 하는 '칩 위의 실험실' 랩온어칩(Lab on a Chip)이나 유전자 검사를 하는 DNA칩 등이 대표적인 바이오칩이다. 휴렐은 로레알과 함께 동물 대신 화장품의 피부 알레르기 검사를 해줄 바이오칩을 개발하기로 했다.

피부에 해로운 물질이 닿으면 나뭇가지 모양의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가 분비돼 림프액을 통해 림프절에 닿는다. 여기서 수지상세포는 T세포를 불러와 외부 침입자를 공격하도록 한다. 이 반응이 심해지면 피부가 붓고 열이 나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휴렐은 알레르기 반응을 작은 칩에서 이뤄지도록 했다.

투명한 기판 한쪽에는 사람의 피부 세포가 자라고 있다. 다른 쪽에는 인공 림프절 역할을 하는 세포가 있다. 그 사이에는 액체로 채워진 가는 통로가 있다. 피부 세포에 화장품을 떨어뜨리면 수지상세포가 통로를 통해 인공 림프절로 간다. 여기서 T세포가 만들어지면 시험한 화장품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알 수 있다.

현재 휴렐은 수지상세포가 인공 림프절로 가서 T세포를 만들게 하거나 또는 특이한 분자를 분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휴렐의 CEO인 로버트 프리드먼(Freedman)은 "내년쯤 시제품이 나오고 2013년 상용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구슬에 담긴 인공 허파

화장품 독성시험은 피부뿐 아니라 허파도 대상이다. 겨드랑이 냄새를 없애는 데오드란트나 향수는 호흡기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카디프대의 켈리 베루베(B�[ruB�[) 교수는 화장품 독성시험용 마이크로허파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기판에 허파 세포를 배양해 이미 유니레버아스트라제네카 같은 회사에 약품 시험용으로 공급했다. 하지만 평면에 키운 허파 세포와 3차원 구조의 실제 허파 세포는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3차원 인공 장기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은 플라스틱 틀에 줄기세포를 넣고 키우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화장품을 개발할 때마다 일일이 이렇게 인공 장기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연구진은 지름이 0.5㎜인 플라스틱 구슬 표면에 허파 세포를 키웠다. 이런 마이크로허파 수천개를 동시에 만들면 3차원 구조의 인공 허파 역할을 할 수 있다. 베루베 박사는 "인공 허파는 실험용 생쥐보다 인체 효과를 알아보는 데 더 낫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초콜릿은 생쥐에게 독약이다. 또 생쥐는 사람과 달리 코로만 호흡한다. 반면 인공 허파는 사람 허파 세포로 만들어 그와 같은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아직 넘어야 할 산 많아

독성시험용 칩은 실험동물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EU가 지난해 6월 발효시킨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는 유럽에 들어오는 제품은 3만 가지 화학물질의 독성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가지 화학물질의 흡입 시험에만 200마리의 생쥐가 필요하다. 화학물질의 흡입으로 인한 장기적 효과를 알려면 3000마리나 필요하다. 미국의 '책임 있는 의학을 위한 의사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한 해에 1만마리의 생쥐가 화장품 알레르기 검사에 희생된다.

경비 절감효과도 크다. 실험용 동물은 비싼 경우 마리당 1000달러나 된다. 칩은 그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독성시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내 바이오칩 전문 기업인 나노엔텍의 장준근 대표는 "바이오칩에 인간 세포를 키우면서 유전자를 주입하고 분비물질을 확인하는 것은 현재도 가능하다"면서도 "칩에서 키운 세포와 실제 인체 내부의 세포가 똑같지 않아 당분간은 동물시험의 오류를 줄이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몸 밖에 있는 바이오칩의 세포를 인체 내부의 세포와 똑같게 하려면 아직도 풀어야 할 생물학적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유럽의 REACH처럼 사회에서 기술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 기술 발전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2010.01.26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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