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왜 흐르는가? 우주의 탄생에 답이 있다


저번 글 '시간의 방향성'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성이 입자가 많아서 생기는 확률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원자 수준에서 우주 전체까지를 설명하는 근본 물리이론은 과거와 미래를 차별하지 않고 시간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입자가 많으면 특별하게 정돈된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할 확률이 그 반대의 확률보다 월등하게 크기 때문에 시간에 방향성이 생긴다. 이것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더 무질서하게 되는 것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얘기한다.

심리적 시간의 화살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같은 방향이다

시간의 화살에는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이외에 심리적인 시간의 화살도 있다. 우리 인간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있음을 매 순간 느낀다. 우리는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하고 기억으로 저장한다. 그 기억들은 우리의 과거를 구성한다. 하지만 미래는 우리의 기억 속에 없다. 미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나중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방향성을 심리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한다. 물론 심리적 시간의 화살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같은 방향이다. 왜 두 시간의 화살이 같은 방향일까?

새로운 기억을 늘리는 것은 뇌에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뇌는 물론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여기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은 결국 뇌를 구성하는 원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질서한 원자들을 특정한 형태로 재배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뇌 자체만 보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이므로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뇌의 원자가 재배열되는 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음식물에서 얻은 외부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강제로 원자의 배열을 바꾸는 것이다. 마치 포켓볼을 시작할 때 사람이 에너지를 쏟아 당구공을 잘 배열하여 삼각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외부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원자를 배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열은 우리 주변의 무질서한 정도, 즉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결국 우리 뇌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엔트로피가 증가해야만 뇌에 새로운 기억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심리적 시간의 화살은 근본적으로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같은 방향일 수밖에 없다.

우주 초기는 극저의 엔트로피 상태였다

한편 우주론에 의하면 우리 우주는 137억 년 전에 탄생하여 계속 팽창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매우 확고부동하여 물리학의 정설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었다.) 이처럼 과거의 어떤 순간에 우주가 태어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주가 팽창하는 시간의 방향을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 우주는 아직 엔트로피가 최대인 상태가 아니다. 만약 최대라면 모든 것이 고루 섞여서 별이나 지구, 인간 등의 구조들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가 어떤 시작점이 없이 영원히 존재했다면 우리 우주는 진작 엔트로피가 최대인 상태에 도달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우주에 시작이 있었음과 잘 맞는다. 그리고 137억 년 전 우주는 엔트로피가 지금보다 매우 작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계속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은 결국 우리 우주의 초기조건이 낮은 엔트로피 상태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왜 우리 우주는 엔트로피가 매우 작은 상태에서 시작한 것일까? 엔트로피가 작은 상태, 즉 질서 정연한 상태는 매우 특수한 상태이다. 확률적으로는 엔트로피가 높은 무질서한 상태가 압도적으로 가능성이 높다. 우주 초기라고 해서 엔트로피가 낮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 우주는 왜 낮은 엔트로피로 시작했을까?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1931~)라는 물리학자는 우리 우주와 같은 상태가 되려면 우주가 10의 10123제곱 분의 1(=1/10^10^123) 이라는 희박한 확률로 탄생했어야 가능하다고 추산한 바 있다. (이 숫자는 소수점 밑으로 0이10123개가 붙는 수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우리 우주의 탄생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유도, 늙어가는 이유도,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어지는 이유도,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이유도, 모두 우주가 극저의 엔트로피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할 확률은 수학적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그런데 우주는 어떻게 그런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현대물리학에서는 급팽창(inflation) 이론을 유력한 설명으로 제시하고 있다. 급팽창 이론에 의하면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가 매우 크긴 하지만 이는 전체 우주가 아니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전체 우주는 137억 년 전 탄생하여 그 직후에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크게 팽창하였다. 이 급팽창을 통해 전체 우주에서 티끌에 불과한 작은 부분이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로 발전하였다.

즉, 태초에 우주 전체가 매우 무질서하고 엔트로피가 높았어도,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로 발전한 작은 티끌은 그 높은 엔트로피의 극히 일부분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우주가 확률적으로 극히 희박해 보이는 상태인 극저의 엔트로피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급팽창 이론은 아직 완전히 완성된 이론은 아니고 지금도 활발한 연구 주제이다. 하지만 여러 관측을 통해 이 이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작년에 유럽에서 쏘아 올린 플랑크인공위성(오늘의 과학, [세게 던진 뉴턴의 사과] 참조)의 실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더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약력의 시간의 화살

지금까지 설명한 시간의 화살들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로 귀결된다고 하였다. 저번 글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이러한 시간의 방향성은, 근본 물리법칙이 시간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 물리이론의 수준에서 물리학자들은 시간되짚기 대칭성이 물질-반물질 대칭성 그리고 좌우대칭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에 의하면 상대성이론과 모순이 없는 모든 이론은 세 변환을 모두 했을 때 반드시 본래의 이론과 같아져야 한다. 즉, 어떤 이론에서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고(T), 물질과 반물질을 바꾸며(C), 또한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면(P) 항상 대칭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CPT 정리라고 한다.

예전 글 [CP대칭성 깨짐]에서 약력을 제외한 모든 이론은 C와 P에 대해 대칭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들은 자동적으로 시간되짚기(T) 대칭성도 가지고 있다. C와 P에 대해서 대칭인데, CPT대칭이려면 T에 대해서도 대칭일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력의 경우에는 CP 대칭성이 약간 깨져 있다. 그러므로 CPT 정리에 의해 약력은 시간되짚기 대칭성도 약간 깨져 있다. 시간되짚기 대칭성의 깨짐이 CP대칭성의 깨짐을 정확하게 보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약력의 시간되짚기 대칭성의 깨짐으로 인해서 시간의 흐름에서 과거 방향과 미래의 방향에 차이가 나는 것을 약력의 시간의 화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여러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약력의 시간의 화살은 다른 시간의 화살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시간의 화살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의 방향성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차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우주에 존재하기 위한 또 하나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우리 우주에 반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

우리 주변은 모두 물질로 되어 있고 반물질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천체망원경으로 먼 우주를 보아도 반물질로 만들어진 별이나 은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주가 태어날 때부터 물질이 많았고 반물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 왜 반물질이 사라지고 물질만 남게 되었을까?

지난 글 '반물질은 존재한다'에서 설명했듯이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에너지로 바뀐다. 만약 처음에 우리 우주에 물질과 반물질이 똑같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모두 상쇄되어 현재 우주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물질만 있는 것은 처음에 물질과 반물질이 모두 있긴 했지만 물질이 약간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반물질은 모두 물질과 상쇄되어 사라지고 약간의 물질만 남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우주 초기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많았을까?

구(舊)소련에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으며 투쟁한 사하로프라는 분이 있다. 그는 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1975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사하로프는 본래 물리학자였다. 그리고 물리학에도 인권 투쟁 못지않게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우리 우주에서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많아지기 위한 조건을 찾는 데 성공했는데, 그 필수 조건 중의 하나가 근본 물리이론에서 CP 대칭성이 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CPT 정리에 의해 CP 대칭이 깨어지면 자동적으로 T 대칭도 깨져야 한다. 따라서 결국 우리 우주에 현재 우리와 같은 물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근본 물리이론에 시간되짚기 대칭성이 없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약력에서의 시간의 화살은 실제로 우리 우주의 법칙이 그렇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약력의 대칭성 깨짐이 현재까지 드러난 정도로는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양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주와 시간

이 글에서는 우주와 시간의 화살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는 왜 물질로 되어있을까? 우리는 왜 나이를 먹어갈까? 깨어진 유리잔은 왜 다시 붙지 않는가? 지금부터 137억 년 전, 우리 우주에서 일어난 최초의 사건이 그 답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도, 오늘 식탁에서 떨어져 깨어진 유리잔의 운명도 물리학의 근본법칙과 그 안에 구현된 대칭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김찬주 /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시립대와 고등과학원,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연구하였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출처>네이버캐스트, 2010.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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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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