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빠르게, 더 많은 정보를 담는다. 정보 저장의 역사 속 커다란 혁명

인간의 문명은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면서부터 급속히 발전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정보는 문자가 사용되면서부터 기록으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종이와 인쇄술의 발명에 힘입어 더 멀리 퍼지게 된다. 자기기록장치(magnetic recording devices)의 등장은 이러한 정보 저장의 역사에 커다란 혁명이었다. 1898년 음성을 녹음하는 텔레그래폰(telegraphone)으로부터 시작된 자기기록장치의 역사는 이후 영상과 데이터를 기록·저장하는 장치의 개발로 이어지며 현대의 정보화 시대를 열었다.

정보를 담는 그릇, 자기기록장치

전자석 원리와 전자기유도 현상을 이용하라

자기기록장치란 한마디로 자기현상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장치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기록을 활용한 물건이 많다.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하드디스크, 신용카드, 현금카드, 은행통장, 전철승차권, 상점의 도난방지장치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기기록장치가 널리 쓰이게 됐을까? 첫째는 정보의 기록과 재생이 쉽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기록장치의 전원이 꺼지더라도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기록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갑을 열고 신용카드를 꺼내보자.

카드의 뒷면을 보면 검은 띠가 하나 있다. 이것은 자기테이프로 산화철 등의 자석가루가 발라져 검게 보인다. 카세트테이프나 하드디스크 같은 다른 자기기록매체들도 띠 모양이나 원판 모양의 플라스틱판에 자석가루가 발라져 있는 형태다.

그렇다면 이들 자기기록매체에 어떻게 정보를 기록하고, 기록된 정보를 다시 읽어낼 수 있을까?

자기기록매체에는 전자석의 원리와 전자기유도 현상이 이용된다. 기록을 할 때는 전자석 부근에 자기테이프를 지나가게 해 정보를 기록한다. 전류에 의해 생성된 자기장은 전류의 방향에 따라 방향도 뒤바뀌게 되는데, 이때 자기테이프 표면에 발라진 자석가루가 극을 달리하며 자화된다. 결국 자화된 테이프는 N극과 S극이 엇갈려 있는 미세한 자석의 합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기록된 정보의 재생은 자화된 자기테이프를 전자석 부근에 지나가게 하고, 전자기 유도현상에 따라 발생한 전류를 감지시키면 된다. 이 같은 원리는 거의 모든 자기기록장치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녹음기로 시작한 자기기록장치

최초의 자기기록장치는 1898년 덴마크의 발데마르 포울센(Valdemar Poulsen, 1869~1938)이 발명한 텔레그래폰이다. 원통에 철사가 촘촘히 감겨있고, 이 철사에 자기로 음성을 기록·재생하는 녹음기다.

테이프리코더의 전신이랄 수 있는 장치로,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포울센의 텔레그래폰은 상품화에는 실패했다. 녹음의 질이 떨어졌을 뿐더러 재생할 때의 진동으로 잡음이 컸으며, 한 시간 녹음을 위해서 수 킬로미터의 철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기테이프는 한참 후인 1928년 독일의 프리츠 플로이머(Fritz Pfleumer, 1881~1945)가 발명했다. 그는 철사 대신 종이테이프에 자석가루를 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이로 된 자기테이프는 가볍고, 빨리 감을 수 있으며, 잘라내어 편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쉽게 찢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발전시킨 것이 바로 플로이머의 특허를 산 독일의 아에게(AEG)사였다. 1936년에 아에게사는 종이 띠 대신 플라스틱 띠를 사용한 자기테이프로 마그네토폰(Magnetophone)이라는 녹음기를 선보였다. 이후 자기테이프는 음성 및 영상 기록에 사용되면서 음악과 방송 등 미디어산업의 변혁을 주도했다.

자기테이프에서 하드디스크로

마그네토폰에 사용된 자기테이프가 녹음용이었다면 데이터 저장장치로 쓰인 첫 자기테이프는 1951년 레밍턴랜드사에서 개발한 유니서보(UNISERVO)다. 유니서보는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박(UNIVAC-I)의 기억장치로 사용됐다. 이후 자기테이프는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기록·재생하고, 반복적으로 기록이 가능하다는 장점에 힘입어 데이터 저장장치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자기테이프에 저장된 특정 부분의 자료를 재생하려면 그 위치까지 테이프를 감아줘야 해 원하는 데이터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개선한 것이 플로피디스크나 하드디스크 같은 원판 형태의 매체다. 자기테이프처럼 자성체 가루가 원판(플래터) 양쪽에 입혀져 있었고, 표면은 수많은 트랙과 섹터로 구분돼 있어 기록과 재생 속도가 매우 빨랐다.

최초의 하드디스크는 IBM이 1956년에 개발한 자기테이프 방식의 RAMAC305이다. 옷장만한 크기에 무게가 1톤에 이르지만 저장용량은 5MB(메가바이트)에 불과했다. 오늘날 MP3 음악 파일 한 개밖에 저장할 수 없는 용량이다

1970년대 말에는 IBM이 박막 형태의 자성물질을 이용한 재생헤드를 개발함으로써 하드디스크의 저장용량이 점차 늘었다. 1971년에는 현재와 같은 구조의 하드디스크 IBM3340이 개발됐다. 이때부터 금속재질의 플래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단단하다는 의미에서 하드디스크라 불리게 됐다.

하드디스크 대용량의 일등공신, 거대자기저항


하드디스크의 저장용량이 현재처럼 획기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IBM이 1991년 자기저항(Magneto Resistance, MR) 효과를 하드디스크 헤드에 응용하면서부터다. 자기저항이란 강자성체에 자기장을 가하고 전류를 흘려주면 자기장이 없을 때보다 전기저항이 커지는 현상이다. 이는 1850년대에 영국의 물리학자 배런 켈빈(윌리엄 켈빈, William Kelvin, 1824~1907)이 처음 발견했다. MR 헤드 기술 덕분에 1평방 센티미터 당 1MB였던 하드디스크 저장용량이 금방 10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MR 하드디스크의 용량 확장은 두 번째 전환점인 GMR 하드디스크의 용량 폭발을 위한 격발 장치에 불과했다. GMR 효과는 200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 율리히연구소의 페터 그륀베르크(Peter Grunberg, 1939~) 박사와 프랑스 남파리대학의 알베르 페르(Albert Fert, 1938~) 교수가 1988년에 각각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두 강자성층 사이에 금속층을 껴 넣으면(또는 강자성체와 반강자성체를 번갈아 붙인 박막의 경우) 외부 자기장의 세기가 조금만 변해도 전기저항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으로, 그 저항차가 MR의 수십 배에 달했다. MR 앞에 ‘거대(Giant)’라는 단어를 덧붙여 거대자기저항(Giant Magneto Resistance, GMR)이라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장의 작은 변화에도 저항이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은 그만큼 정밀한 하드디스크 헤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GMR 헤드는 두 개의 강자성층 사이에 금속층을 끼워 넣은 구조를 사용한다. 이 덕분에 하드디스크에서 1평방 센티미터 당 저장용량이 곧장 100MB 정도로 높아졌다. 현재는 100배 수준인 10GB에 이른다. 1997년 IBM이 GMR 헤드를 장착한 하드디스크를 첫 출시한 이래 하드디스크의 용량은 급격히 증가해 테라바이트를 넘게 됐다.

더 빠르고, 더 큰 용량을 위하여


하드디스크 용량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입출력 속도 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는 정보를 쓰거나 읽을 때 디스크의 회전과 헤드의 움직임이라는 기계적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하드디스크의 입출력 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AM(Random Access Memory)에 주목했다. RAM에서는 전자의 움직임만을 이용해 정보를 읽고 쓰기 때문에 정보의 입출력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하지만 RAM은 반도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원이 끊기면 정보가 지워지는 단점이 있고, 제작 공정상의 어려움으로 저장용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RAM의 고속기록재생 속도와 하드디스크의 큰 저장용량의 장점을 모두 가진 ‘유니버설 메모리’를 생각하게 됐다. 유니버설 메모리의 후보 중 가장 유력한 것은 MRAM(Magnetic RAM)이다. MRAM은 GMR에 바탕을 둔 터널링 자기저항 효과를 응용했다. 터널링 자기저항 효과는 두 개의 강자성층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층을 끼워넣은 구조에서 나타난다. 한쪽 강자성체에 있는 전자가 양자역학적 현상인 터널링으로 절연층을 통과해 다른 쪽 강자성체로 이동할 때 나타나는 자기저항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모토로라와 IBM 같은 기업에서는 수십 MB 용량의 MRAM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아직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난점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MRAM이 실용화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MRAM이 실용화되면 빠른 기록·재생속도에, 전원이 차단돼도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큰 용량의 메모리를 얻게 된다. 이것은 부피가 작아지고, 부팅 과정이 필요 없는 컴퓨터를 사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자기기록장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 자성 나노선에서 자기 구역의 움직임이나 전자가 가진 스핀이 회전하는 현상 등을 이용해 새로운 자기기록장치를 연구하고 있다. 더 빠르고, 더 용량 큰 자기기록장치의 출현은 먼 일이 아니다.

박막
기계 가공으로 만들 수 없는 두께 1/1000mm 이하의 막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강자성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자기화된 뒤, 외부 자기장이 사라져도 자기화가 그대로 남아있는 성질.


절연층
전류가 통하지 않는 층.


나노선
1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정도의 극미세선.

<출처>네이버캐스트, 2011.06.28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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