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에너지 소비국이다. 작년 한 해 우리는 무려 85조원의 에너지를 수입했고, 그 중 원유 수입에만 55조원을 썼다. 우리나라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액을 합한 금액보다 훨씬 많다. 국가 생존을 위해서도 석유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은 시급한 일이다.


그 동안은 원자력이 효자 노릇을 했다. 총 에너지 수입액의 0.6% 정도에 불과한 금액으로 들여오는 우라늄으로 국내 전력의 40%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우라늄 역시 매장량에 한계가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가격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태양열이나 풍력, 조력, 지열 같은 신(新) 재생에너지만 믿고 있을 수도 없다. 에너지 변환 효율성이 낮은 데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대용량 에너지를 생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수요의 20% 이상을 경제성 있게 공급하는 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핵융합 에너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자연 자원이나 여건에 관계없이 기술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태양열 발생 원리와 같아
소량 원료로 무한한 에너지
原電보다 안전하고 친환경적


■ 태양에서 찾은 에너지


핵융합 에너지의 원리는 태양이 열을 내는 것과 같다. 태양에서는 엄청난 온도와 압력 때문에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각각 따로 움직인다. 기체, 액체, 고체와 다른 이른바 ‘제4의 상태’라는 ‘플라스마(plasma)’다.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융합해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뀐다. 이때 감소되는 질량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를 핵융합에너지라 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우라늄 핵분열로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물리 현상이다.


핵융합에는 양성자 하나를 가진 일반 수소가 아닌 중수소(양성자 1개와 중성자 1개)와 삼중수소(양성자 1개와 중성자 2개)가 이용된다. 중수소는 바닷물 1L에 0.03g이 들어있다. 이 정도면 서울~부산 간을 세 번 정도 왕복할 수 있는 300L의 휘발유와 동일한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삼중수소도 바닷물에 소량 들어있지만 핵융합로에서는 리튬이란 원자를 핵 변환시켜 만든다. 리튬 역시 1500만 년 이상 쓸 수 있을 만큼 매장돼 있다.


핵융합로에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혼합연료 1g으로 시간당 10만㎾(킬로와트·1㎾는 1000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300g의 삼중수소와 200g의 중수소만으로도 고리 원자력 발전소같은 50만㎾급 발전소 4기를 하루 동안 가동 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원료 걱정은 없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지 않고, 200여 년이 지나면 방사능 독성도(radiotoxicity)가 화력발전소의 석탄재보다 낮아지는 저준위 폐기물만 나오니 안전성도 걱정없다.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도 배출되지 않는다.


문제는 기술이다. 태양같은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만들고 안정적으로 가둘 수 있는 핵융합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현재 가장 실용화에 근접한 방식은 강한 자기장을 이용하는 자기밀폐 방식의 ‘토카막(tokamak)’ 장치이다. 토카막은 강한 자기장으로 초고온 플라스마가 진공 용기 벽면에 닿지 않게 하면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美·EU등 엄청난 개발비 투자
한국 핵융합기술도 세계수준
2040년 상용발전소 건설목표

■ 한국의 인공태양 KSTAR


토카막은 1952년 옛 소련의 탐(Tamm)과 사하로프(Sakharov) 박사가 처음 고안했다. 한동안 답보상태에 있다가 1990년대에 들어 컴퓨터와 재료공학의 발달로 핵융합 에너지 개발이 가속화됐다. 1997년 EU(유럽연합)의 대형 토카막 장치인 ‘JET’에서 세계 최초로 1만6000㎾의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듬해 일본의 핵융합로인 JT-60U는 투입 대비 출력에너지가 같은 에너지 분기점(Q=1)을 넘겼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핵융합 연구에 뛰어들어 1970년대 말 서울대학교에서 SNUT라는 소형 토카막을 개발했고, 1989년 원자력연구소도 KT-1이라는 소형 토카막을 제작했다. 국내 연구는 1995년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AR)’ 건설 계획이 확정되면서 한 단계 도약했다. 다른 나라의 토카막은 구리선으로 자기장을 만들어 엄청난 열이 발생했으나, KSTAR는 전류가 흐를 때 저항이 0인 초전도체를 사용해 그런 문제를 없앴다.


우리나라의 핵융합 기술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세계 수준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ITER는 2015년 열 출력이 한국형 표준 원전의 6분의 1인 50만㎾와 투입 대비 출력에너지 비율(Q) 10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과 옛 소련이 먼저 시작했고, 이어 EU, 일본, 한국,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참여했다.


ITER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6조 960억 원이다. 실험로가 프랑스에 들어서기 때문에 EU가 45.46%를 부담하고, 나머지 6개국이 각각 9.09%씩 분담한다. 따라서 우리 몫은 8767억 원 정도다. 이 가운데 현금 비중은 22%이며, 나머지는 KSTAR 건설과정에서 개발한 부품을 현물 출자형식으로 공급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핵융합 연구를 시작할 때는 기술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20년 이상 뒤처졌지만, 현재 KSTAR 요소 기술의 자립도는 80%에 육박하고 있다. 핵융합 상용발전소가 건설될 때쯤엔 우리와 선진국의 기술 격차는 거의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 선진국들 무한 경쟁 나서


핵융합에너지는 에너지 자급뿐 아니라 새로운 시장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KSTAR 사업에 참여한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두산중공업 등 30여 개 업체는 ITER 건설에도 참여하게 돼, 향후 상업용 핵융합발전소 건설을 위한 핵심 기술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50년 후 150만㎾ 상업용 핵융합발전소의 건설 비용은 약 40억 달러로 예상된다. 2005년 발표된 국가원자력기술지도는 이때쯤 극동 지역에서 200기의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 수요가 발생해 최소 8000억 달러 시장을 이룰 것으로 예측했다. 설계나 보수, 부품산업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2조 달러에 달한다. 이때 우리나라는 앞선 기술로 극동 핵융합에너지시장에서 3000억 달러 이상의 시장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핵융합에너지는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연 60조원 규모의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중, 핵융합에너지 파생 기술인 플라스마 기술로 감당할 수 있는 비율이 70%로 분석된다. 이밖에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수소발생 장치, 태양전지 등에의 다양한 응용을 고려하면 경제적인 파급효과는 적어도 수백 조 원 규모는 된다는 얘기다.


선진국들은 핵융합에너지의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고려해 핵융합 관련 투자 예산을 계속 늘리고 있다. EU는 지난 3월 향후 35년간 96.5억 유로(약 12조5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2003년 이후 20년 동안 과학기술 분야 시설투자의 최우선 순위에 핵융합을 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지난 5년 간 연 평균 약 2500억 원을 투자했다. 일본 역시 최근 5년간 인건비 및 간접경비를 제외하고도 매년 약 1100억 원을 핵융합에너지 연구에 투입하고 있다. 기존의 JT-60 핵융합로를 초전도 토카막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KSTAR은 오는 8월 조립 완료될 예정이다. 시험운전을 거쳐 내년 6월쯤 첫 번째 플라스마를 만들게 된다. 지난 2일 국회는 ITER 프로젝트 공동이행협정을 비준했다. 2040년 중천에 떠있을 한국산 인공태양이 이제 막 수평선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오는 8월 조립이 끝나는 한국 핵융합실험로 KSTAR 설명 애니메이션.
/핵융합연구센터 제공



신재인 핵융합연구센터 소장 jaeishin@nfrc.re.kr
이영완 산업부 기자(과학팀장) ywlee@chosun.com


<출력> 조선일보, 2007.04.16 10:10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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