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살고 있는 현재는 약 200만년 전부터 시작된 빙하기 사이에 낀 간빙기에 해당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빙하기의 도래는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이 같은 빙하기의 도래를 앞당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빙하기 도래를 점치는 과학자들은 그 시기를 1만5,000년 후로 점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인류가 환경에 미친 영향으로 새로운 지질시대가 이미 도래했으며, 이는 기존의 지질시대와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몇년 전 미국 할리우드 영화 ‘투머로우(Tomorrow)’에서는 뉴욕 등 미국 동부지역이 빙하에 뒤덮여 인류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설정이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적도지방의 해수 온도와 극지방의 해수 온도 차이가 줄어들어 해류 이동이 중단되고, 이 결과 적도지방의 열이 극지방으로 발산되지 못해 적도지방은 더 뜨거워지고 극지방은 더 차가워진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과연 이 같은 빙하기는 도래할 것인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수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 지구의 열 이동을 담당하는 해양 대순환이 한꺼번에 차단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지구온난화가 과연 해양 대순환을 멈추게 할 정도로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만5,000년 후 빙하기 도래?

사실 인류가 살고 있는 지금은 약 200만년 전부터 시작된 빙하기 사이에 낀 간빙기에 지나지 않는다. 즉 현재의 지질시대는 신생대 내에서 제4기 홍적세의 빙하기를 거친 충적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홍적세는 약 200만년 전 시작돼 1만년 전 끝난 시기로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크게 4회의 빙하기와 이들 사이의 간빙기가 있었다. 이 마지막 빙하기 이후인 약 1만년 전부터 시작된 간빙기를 충적세라고 부르는데, 이 때 비로소 인류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출현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기가 일찍 다가온다면 이는 인류가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대사건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빙하기의 도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르지만 문제의 핵심은 현재 진행 중인 지구온난화가 이 같은 빙하기를 앞당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지구온난화로 빙하기가 일찍 다가온다면 이는 인류가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최초의 대사건이 될 것이란 게 과학자들의 전망이다.

약 45억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상에서 인간이 인위적인 활동에 의해 영향을 끼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저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의 일부로 포함돼 지구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최근 지질학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후 그들의 활동이 지표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지구의 기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기의 조기 도래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가장 유력한 시기로 1만5,000년 후를 꼽고 있다. 그 증거는 지난 2004년 남극에서 채취한 길이 3km의 빙하코어 를 분석한 결과다.
당시 유럽 남극빙하프로젝트 팀이 빙하코어를 분석해 네이처지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 빙하기는 약 10만년마다, 더 짧은 빙하기는 4만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기후의 한온(寒溫)을 기준으로 하자면 빙하기의 주기적인 반복은 더욱 짧아질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분석을 근거로 현재의 간빙기가 1만년쯤 계속되고 있어 과거의 패턴을 따른다면 1만5,000년 뒤쯤 빙하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새로운 빙하기의 도래에는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의 정도와 속도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밀란코비치 주기


4만년마다 반복되는 짧은 빙하기를 밀란코비치 주기(Milinkoritch cycle)라고 부른다. 이 같은 명칭은 이를 발견한 유고슬라비아 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지구 자전축의 주기적인 변화, 즉 세차운동(歲差運動)이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과학자들은 23.5도 기울어져 자전하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그냥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4만년을 주기로 팽이가 돌 듯 비틀거리면서 이동, 세차운동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기후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기후 변화로 빙하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를 증명할 결정적인 사례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약 43만년 전, 즉 신생대 제4기 홍적세 중기에 있었던 간빙기는 기온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지금과 매우 유사했으며 그 시기가 2만8,000년간 지속됐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예기치 않은 기후 변화에 의해 간빙기가 극도로 짧아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제3차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다시 따뜻해지자 빙하가 점점 극지방으로 물러가면서 북미지역에 캐나다 면적의 3분의 1 크기의 거대한 빙하 호수가 생겨났다. 그런데 이 호수 주변의 빙하가 한꺼번에 녹으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빠르게 대서양으로 유입됐다.

그 결과 해양 대순환이 갑자기 작동을 정지했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극지방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 해양 대순환의 정지가 우려되는 현재의 상황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지구가 간빙기에서 새로운 빙하기로 접어든 시간의 간격이 길게는 수 천 년에서 짧게는 수 백 년이나 짧아졌다. 또 다른 예는 고생대 말기인 페름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지구 역사상 세 번째 생물 대멸종(Mass extinction) 시기이자 가장 큰 멸종이 이뤄진 때다. 당시 지구 위를 덮고 있던 양치식물을 비롯해 그 때까지 진화를 거듭해 왔던 삼엽충 등 지구 생명체의 약 99%가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대멸종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금까지는 소행성과의 충돌이 꼽혀 왔지만 최근에는 엄청난 화산 활동에 의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당시 해양 온도 상승으로 바다 속에 있던 메탄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대규모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면서 대기 중의 산소 농도는 그 이전 40~50%에서 10%로 급감하고 지구 온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새로운 지질시대의 도래

이와 관련, 인류가 환경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새로운 지질시대가 이미 도래했으며 이는 기존의 지질시대와는 구별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라이브 사이언스 인터넷 판은 지난 1월 말 크게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거쳐 온 지구의 지질시대가 인류의 산업 활동이 본격화된 200년 전부터 ‘인류세(Anthropocene)’로 넘어왔다고 보도했다. 신생대 제4기 홍적세와 충적세 외에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때부터 인류사회의 문명이 지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이전 시대와 뚜렷한 차별화를 이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잡지는 설명했다. 인류세의 차별적인 특징은 ▒침식과 퇴적 작용의 급격한 변화 ▒탄소 순환의 장애로 인한 기온 상승 ▒개화(開花) 시기 및 철새 이동기의 변화 등 생태계 이상 현상 ▒바다의 산성도 증가에 따른 먹이사슬 파괴 등이다.

인류세에 대한 아이디어는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크뤼천이 지난 2000년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 뒤 2004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로사이언스 포럼에 참석한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는 등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 지질학회 소속인 얀 잘라슈비츠 박사팀은 ‘GSA 투데이’ 최신호에서 “지층학적으로 보면 인류세의 도래를 인정할 수 있는 주요한 변화의 증거가 이미 충분히 발견됐다”며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12월 토양과학지에 실린 또 다른 논문은 토양의 척박화 또는 산성화를 인류세 도래의 직접적인 증거로 들었다.

듀크 대학의 대니얼 리히터 교수는 이 논문에서 아프리카의 토질 척박화 현상을 제기하며 “지구상의 토양 절반 이상이 현재 곡물과 목재 생산 등을 위해 개간된 실정”이라며 “지구상의 토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는 주요한 과학적, 정책적 이슈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출처> 파퓰러사이언스, 2008. 3 기사

Posted by T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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